제1차 세계대전과 참호전의 끔찍한 악몽
크리스마스가 불러온 잠깐의 휴전 상황
무인 지대에서 진행된 축구 경기의 기적

누군가에게는 일 년을 기다려 온 크리스마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몽의 시간이 되고 있다.
전 세계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년째 전쟁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는 크리스마스에도 러시아군의 공세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날에도 러시아군의 만행은 이어지고 있지만 역사 속에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자그마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난 사례도 존재한다.
1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옥의 참호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약 110년 전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무려 천만 명 수준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 부상자와 실종자까지 합하면 약 3,8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극이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지지부진한 참호전 때문이었는데 기관총과 철조망은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1등 공신이었다.
대표적으로 1916년에 발생한 베르됭 전투나 솜 전투는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정도였으며 전쟁이 아닌 전투에서 이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그 이전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치다.
그만큼 참호전은 공격과 방어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유발했으며 지옥 같은 참호전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만들어낸 아주 짧은 휴전

그러나 이렇게 끔찍했던 전쟁 속에서 아주 자그마한 기적이 크리스마스에 발생했다. 때는 1914년, 협상국과 동맹국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서 갑자기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캐럴은 아군 진영을 넘어 적군 진영까지 퍼졌으며 캐럴로 시작된 화해 분위기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이어졌다. 그렇게 양측 군인들은 참호 위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으며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잠시간의 정전이 발생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참호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였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양측 군인은 서로의 음식을 나눠 먹거나 술과 담배 등의 기호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된 장교와 부사관들도 상대측 간부와 교전 중단을 합의하고 무인 지대의 시신 등을 수습하기도 했다.
무인지대에서 벌어진 양측의 축구 시합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화는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빈 땅에서 양측이 축구를 즐겼다는 이야기다.
해당 일화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다루는 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항시 언급되는 일화지만 사실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다.
후대에 해당 사건을 연구한 사학자들은 영국과 독일의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축구 경기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축구 경기는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을 맞아 잠시나마 교전을 멈췄던 자그마한 기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이후 1915년부터는 양측의 참호전과 소모전이 더욱 심해지면서 서로를 원망하는 감정이 커지고 1914년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부 전선에서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면 암묵적으로 며칠간 교전을 피하고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찾게 만들었던 작은 기억은 지금도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